그렇게 암울하기만 하던10대 시절이 흘러가고, 20대가 되면서 슬슬 마크의 진로에도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17살부터 만난 여자친구 모 콘스탄틴과 함께 미래를 그리며 미용실에서 일했는데요. 미용실에서 일하다 보니 헤어 디자인과 두피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했고, 자연스럽게 뷰티 제품들에도 관심이 갔죠. 그러던 중 ‘나만의 제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과 함께 천연 재료들을 활용한 뷰티 제품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죠.

본업을 하며 천연 제품 개발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도 뷰티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고민을 나눴겠죠?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같은 샵에서 근무하던 뷰티 테라피스트인 리즈 위어도 관심을 보였어요. 이 둘은 마음이 너무 잘 맞은 나머지 1977년, 콘스탄틴&위어라는 뷰티 클리닉을 공동 창업하게 돼요.

과일과 채소, 식물, 꽃 등에서 추출한 천연 성분으로 염색약, 샴푸, 아로마 테라피 두피오일 등 화장품을 제조해서 판매했죠. 당시에는 흔치 않던 친환경 제품이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기존 기성 제품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기에 딱히 소비자들의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어요. 아무래도 친환경을 강조하다보니 제품의 성능 측면에서 세정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힘들게 찾은 꿈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여러 해결책을 강구하던 나날 중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자연주의 화장품에 대한 기사가 눈에 딱 들어오는 거에요. 여기서 잠깐,  텔러비님은 혹시 자연주의 화장품 하면 러쉬 말고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한국 브랜드인 더페이스샵과 이름이 상당히 비슷한데,, 네, 맞아요! 이 때 마크가 읽은 기사엔 바로 ‘더 바디샵(The Body Shop)’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기사를 읽은 마크는 이거다 싶어서 더 바디샵의 대표인 애니타 로딕에게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과 그 취지를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는데요. 진심이 통했던 걸까요? 제품을 받아 본 애니타 로딕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여 흔쾌히 콘스탄틴&위어의 제품들을 더 바디샵에 납품시키기로 해요. 그렇게 더 바디샾에서 판매가 시작 된 콘스탄틴&위어의 제품들은 거짓말처럼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더 바디샵이 성장함에 따라 콘스탄틴&위어도 덩달아 최대 공급자가 됐죠.

이쯤에서 이상한 점 하나가 보이시지 않나요? 브랜드 이름이 ‘러쉬’가 아닌 ‘콘스탄틴&위어’ 잖아요?! 다른 여느 브랜드들처럼 리네이밍을 한걸까요? 이번 경우엔 조금 달라요. 잘 팔리던 콘스탄틴&위어가 탐나던 더 바디샵은 콘스탄틴&위어의 제품 독점권을 원했어요. 인수합병 제안을 받은 마크와 리즈는 결국 고민 끝에 1984년에 콘스탄틴&위어를 더 바디샵에 1,100만 파운드에 매각해요.

*리네이밍: 브랜드의 이름을 바꾸는 것. 즉, 개명을 뜻한다.

될 놈은 된다

콘스탄틴&위어를 매각하고 나서 3년간의 안식을 잠시 갖은 후, 마크와 리즈는 함께 일하던 직원들과 함께 1987년, ‘Cosmetics to go’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데요. 여기서도 전과 마찬가지로 천연 제품들을 다루었어요. 그들은 전화로 주문을 받아서 여러 주문들을 모은 후에 한꺼번에 배송 시켜주는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자신들을 너무 과소평가 했던 걸까요? 예상보다 너무 많은 주문이 밀려오는 바람에 배송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게 하나 둘 쌓이다 보니 배송은 점점 늦어지게 됐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폭발했어요. 이렇게 제품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더해져 ‘Cosmetics to go’는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되죠.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나요? 이 때, ‘Cosmetics to go’의 고객 중 하나였던 ‘앤드류 게리’라는 남자가 불쑥 등장해요. 그는 단순히 면도크림을 주문하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가 상담원으로부터 우연히 Cosmetics to go가 폐점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Cosmetics to go의 제품을 사랑했던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자신이 힘을 쓰기로 하죠. 수많은 고객중의 한명이 갑자기 무슨 힘을 쓰냐구요? 그건 바로 앤드류 게리가 투자 전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그는 자기가 직접 투자를 얻어 오기로 약속했어요. 그렇게 앤드류 게리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투자를 받아왔고이렇게 열려있는 자세로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시작되었기 때문일까요? 러쉬는 지금까지도 외향적인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어요.

러쉬는 '핸드메이드', '친환경', '동물실험 반대', '인권 향상', 그리고 '공정 무역' 등의 가치를 품은 친환경, 친인류적 기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가치들은 단어 그대로 제품 라벨이나 매장, 그리고 러쉬가 판매하는 가방에서도 뚜렷이 나타나죠. 가방에 적혀있는 'Fighting Animal Testing'라는 슬로건만 봐도 동물실험에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되니까요.

이 뿐만 아니라 러쉬 제품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제품에 방부제를 최대한 적게 쓴다는 건데, 심지어 몇몇 제품은 방부제를 아예 안 써서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정말 짧아요. 향수는 3년, 대부분의 제품은 14개월, 무방부제 세안제나 마스크는 4개월, 팩은 28일짜리 유통기한을 가지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세안제가 개봉 후 1년, 팩의 경우에도 6개월은 사용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나 차이가 크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드셨나요? 물론, 효율을 극대화 시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이지 못할 수 있지만, 이는 러쉬가 인공 성분 사용을 최소화하려는 철학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죠. 러쉬의 친환경적인 정책을 일일이 다 나열 하다가는 정말 날이 샐지도 모르니 이쯤 해야겠네요..하하

One more thing

혹시 러쉬 제품 사용하시면서 붙어있는 라벨지를 상세히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유심히 보신 분이라면 키치한 사람 얼굴이 라벨지에 들어가 있는 걸 보셨을텐데요, 제품의 유통기한 정보에 들어가는 사람 얼굴 일러스트는 실제로 그 제품을 만든 직원의 모습을 담아내어, 직원 개인의 공헌을 기리는 거라고 해요. 이것도 러쉬가 자신들의 직원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사례라고 볼 수 있죠.

그렇다고 마냥 순하지만은 않아

그렇다고 해서 러쉬가 뭐든지 다 순하다고만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천연 화장품을 전면에 내세우긴 하지만, 러쉬 제품이 항상 순하다는 보장은 없다고 해요. 에센셜 오일이나 식물 추출물 때문에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죠. 미국의 화장품 전문가 폴라 비가운 같은 이들도 비슷한 지적을 한 적이 있어요. '천연 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런 비판 말이죠.

실제로 성분을 따져보는 사이트에서 러쉬 제품 몇 개가 다른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의 위험도를 갖고 있다고 나와요. 이는 에센셜 오일이나 향료 같은 자극적인 성분도 천연 재료라고 하지만, '천연=순함'이라는 공식이 늘 들어맞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러쉬는 천연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해 '천연'이라는 타이틀은 단단히 지키고 있어요.  만약 '순함' 그 자체의 제품만을 찾으신다면, 상담을 통하여 조금 더 신중한 선택을 하셔야 할 거예요.

김치 프리미엄?

전 세계 러쉬 매장을 둘러보다 보면 한국이 유독 비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의아하지 않나요? 아니 물가는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같은 선진국들이 훨씬 높은데, 왜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러쉬 제품 가격은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걸까요. 실제 물가 차이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의 가격이 반값이어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말이죠. 이런 기이한 현상 덕분에 2013년 3분기에는 명동점이 전 세계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답니다.(한국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 크게 놀랍지가 않으신가요?^^) 그런데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비싼 걸까요?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한데요. 한국에 러쉬 제조 공장이 없기 때문이에요. 프레쉬 제품을 만드는 키친은 있지만, 그 외의 모든 제품들은 영국과 일본에서 직수입해와야 하니까요. 수입세, 관세, 운송 및 물류 비용에 각 유통 단계에서 붙는 마진까지 더해지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서운하지 않나요? 제품이 한국에만 들어오면 희한하게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은 비단 러쉬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죠. 스타벅스, 이케아, 다이슨처럼 이미 그 문제가 제기되어 온 브랜드들을 넘어서서, 비교적 최근에 들어선 파이브가이즈도 뉴욕보다는 8%, 미국 평균보다는 13% 비싼 가격을 책정했고요. 팀홀튼은 심지어 캐나다에서는 중저가 커피 브랜드로 통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 중이예요. 예를 들면, 캐나다에서 한 잔에 1,800원하던 커피가 한국에선 3,900원이고, 10개에 3,000원하던 팀빗은 무려 7,000원이나 하죠. 이렇게 한국에서만 유독 가격 프리미엄이 붙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요?

우린 우리가 갈 길을 갈게

자, 다시 러쉬로 돌아와 보면, 이 회사가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브랜드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화제의 중심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죠. ‘Go naked’ 캠페인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여기서 'naked'는 말 그대로 '나체'라는 뜻이에요. 러쉬가 추구하는 건 제품을 '나체', 즉, 말그대로 과대 포장을 배제한 채로 만드는 거죠. 과대 포장은 결국 불필요한 쓰레기로 이어지니까요. 이 아이디어를 실천하기 위해 러쉬 직원들은 때로는 앞치마만 입고 거리 행진을 벌이기도 해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이벤트를 했다고 하니, 이들의 행동력에는 정말 놀랄 수밖에 없죠. 물론 한국에서는 적당한 선에서 조정을 했다고 하네요~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이에요. 러쉬는 국내에서 전개하는 화장품 브랜드 중에서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워 지지하는 유일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어요. 소수자 인권에 중점을 두고, 직원 모집 공고에도 LGBT,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지지하고 환영한다는 문구를 당당히 넣습니다. 심지어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거나, 축제에서 직원을 모집하기도 했어요. 러쉬코리아의 우미령 대표의 말에 따르면, 러쉬 매장 남자 직원의 80%가 성소수자라고 하니, 이들의 포용력과 지지는 정말로 대단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죠.

이렇게 러쉬가 추구하는 자연주의, 친환경, 동물보호, 성소수자 지지 같은 가치들은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지향하는 방향성과 정말 잘 부합하고,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은데요. 러쉬의 이런 정책들과 행보가 텔러비님의 소비 습관과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러쉬의 창립자인 마크 콘스탄틴의 암울했던 10대 시절부터, 러쉬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의 스토리가 재밌으셨나요? 이야기가 재밌으셨다면 러쉬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공유해주세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저는 또 다음 브랜드를 공부하러 떠나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봬요!

콘텐츠 디렉터 리오